리호 Lee Ho | 나의 작업은 개인적인 불안에서 출발하였고, 어떤 형태들을 담고 있지만, 동시에 그 형태를 응시하기 전에 색 자체를 응시하기를 원하고 있다. 동양화 재료인 장지의 스며듦과 분채와 아교의 유동적인 혼합, 그리고 그 위로 얹어지는 호분의 평면성 이 세 가지의 관계들이 부딪히며 자아내는 기묘한 색감은 나의 정서적 동요와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 순간적인 감정의 동요를 줄타기 하듯 즐기며 그 기저에 질문을 던지는 작업을 하다보면 내가 하고 있는 이 작업이 어떤 힘을 가지고 있음을 알 것 같고, 그것이 아니더라도 구태여 그에 대한 명확한 답을 찾지 않아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생경했던 것들을 나만의 방식으로 상상하고 그 기저의 불안을 탐구해내는 것 또한 내가 작업을 통해 재미를 느끼는 순간이다.

박예지 YeJee Park | A small nest in a nostalgia - 바람을 등지고 따스한 햇빛이 드는 새둥지처럼, 가족 간의 따뜻했던 기억들은 나를 성장시키는 날갯짓이 되었고, 나는 이런 가족애를 그림으로 보답하고, 추억으로서 각인시키고 있다. 나 뿐 아니라 우리 모두가 단편적일지언정 가족에 대한 행복한 기억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나의 단편적 기억들을 담은 작품들을 통해 관객들이 각자의 추억을 떠올리며 잠시나마 회상의 웃음을 지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것이다. 나는 이러한 세대 간의 유대 관계를 통해 나를 알게 되었고 인류를 구성하는 최소의 단위인 가족의 소중함을 작품으로 이야기하고 소통하려 한다.

오승은 SeungEun Oh | 채소들은 우리의 밥상에서 무차별하게 사장되어버리는데 아이러니하게 우리의 몸속에서는 자연스레 하나가 된다. 몸속 여기저기로 스며들게 되면서, 만물의 영장이라고 일컫는 인간과 존재감이 미약한 채소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것은 나름 드라마틱한 서사다. 그렇다면 이것은 채소의 소멸일까? 아니면 또 다른 탄생일까? 나는 작업에서 보는 이들에게 우리가 보고 있는 현상들의 이면을 생명체의 내부에서, 그리고 추상과 구상의 간극 사이에서 본인의 작업을 매개로 하여 상상해 볼 것을 권한다. 이 모든 것을 느끼는 유기체로서의 ‘몸’이야말로 우주와 세계의 함축으로 마치 부지불식간에 섭취되는 채소의 죽음처럼 어디선가는 계속 생명으로 연결되고 있음을.

오아  Oh Ah | Supposition - 나의 그림에서는 관찰자로서의 시선이 주관에서 출발하지만 어느 정도의 객관을 간지럽히느냐가 그야말로 관건이다. 객관은 고정된 것이 아니다. 우리의 일상과 여행이 그렇듯, 거기서 만난 사람을 새로운 사람들에게 소개해주는 것처럼 객관은 계속 확장되는 시선이다. 나는 이러한 관점에서, 각자의 응시와 시선이 너무 하나로 모이지 않고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분포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린다. 나의 가정은 늘 주체적이지만, 그 역시 하나의 관점이라는 겸허함을 잊지 않기 위해 애쓴다. 그래서 누군가의 다른 시선이 내 그림 안의 어떤 응시를 해석했을 때 새로운 의미와 재미가 창출된다. 그리고, 그로 인해 생기는 관계들이 대체로 생명력을 갖는다. 그것은 지속성일 수도 있고, 그 자체로서의 생동감일 수도 있다. 나는 그것을 계속 담아가는 작업을 하고 물과 양분을 주어 번식시킬 일종의 책임이 있다.

진강 Qin Qiang | 그림에는 재료의 합이 만드는 추상적인 효과, 작가가 구획하여 만든 기하학적인 도형 외에도 여러 형상이 있다. 형상은 다양한 곳으로부터 왔다. 진강은 사물을 사생하며, 고화를 임모하고 사진 이미지를 그린다. 이질적 존재와 상반되는 힘은 순리를 거스르는 듯 보인다. 그러나 이들은 조화와 모순으로 가득 찬 세계-그림을 구성한다. 아래로 흐른 먹물에서 식물의 잔뿌리가 돋고, 손으로 그린 붓질에서 다시금 손이 돋는 것. 진강은 서로 얽히고 순환하는 존재 방식을 형상이 뒤섞인 그림으로 은유해 낸다. 작업의 주제인 ‘구성의 법칙’은 진강이 그림을 구성하는 방식이면서, 그가 직접 체험하고 눈으로 바라본 세계의 구성 법칙이다.